소한, 대한도 다 지나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는 입춘도 지났건만, 산간 곳곳에 남아있는 빙설 때문에 바람은 매섭고 차기만하다.

내일이면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다. 예로부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로서 일년내내 복 되고 탈 없는 한해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돌아가신 이에게 공경한 마음으로 차례를 올리고 어르신과 친지들에게 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풍습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설날에 대한 세시풍속 중 가장 먼저 그믐날 자정이 넘어서면 “복조리 사려!”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진다. 복조리는 대나무를 쪼개 만든 것으로 쌀을 씻어 돌을 가려내는데 필요한 도구다. 옛날 나의 할머니께선 복조리는, 제일 먼저 사는 것이 더 좋다면서 식구 숫자대로 사서 문턱위에 걸어 놓는데 그 모습이 흡사 처마 밑의 제비집 같았다. 또한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하여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을 깨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찬 물에 세수하고 모처럼 장만한 새 옷을 갈아입고 차례상을 차려놓고 떡국맞이부터 한다. 떡국은 수명장수를 기원하는바, 국수처럼 길게 뽑아 꿩고기, 소고기 또는 굴을 넣고 계란노른자에 김과 실고추로 고명하여 가족친지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먹는 맛이 일품이다.

차례를 마치면 여러 가지 명절 음식을 나누어 먹는 데 이를 음복이라고 한다. 이는 웃어른이 생전에 좋아하고 즐겨 드시던 음식을 회상하면서 새로운 가족들에게 알리고 자손대대로 전승하자는 의미가 있다.

어른께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주면서 운수대통하라고 덕담을 나눈다. 이는 돈을 많이 벌고 올 한해 재액(災厄)은 물러가라는 뜻이다.

이 밖에 놀이로는 어른은 윷놀이. 아이들은 연날리기. 재기차기. 여자들은 널뛰기를 하고, 풍물패들은 동네를 돌면서 지신을 밟아 재액을 쫒는 등 다양한 풍습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의식은 성묘였다. 모든 가족이 조상의 묘를 찾아 참배하는 모습은 우리민족의 독특한 의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평소 자주 올수 없기에 조상들의 외로움을 달래드리려고 심어놓은 '등굽은 소나무 한그루', 그것은 고향을 지키는 효자의 모습과 같다. 가난한 농촌 살림에 모두에게 공부를 시킬 수 없어 장남만 도시로 유학을 보내고 그 밑에 동생들은 부모님 모시고 전답을 일구며 가난과 싸워야만 했던 지난날이 새삼 그리워지는 날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설날은 부모님에게는 고통이었고 철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설레임이었다.

깊어가는 섣달 그믐밤 가족끼리 둘러앉아 옛 얘기 한번 해보자.